레터어리 필진과 연이들이 만날 수 있는 '커피챗' 자리를 마련했어! 우리 필진들은 줄곧 레터어리의 더 나은 방향성을 위해서 연이들의 피드백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하고 있었거든. 연이들이 평소에 레터어리를 재미있게 보고 있는지, 부족하거나 아쉬운 점은 없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말이야.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솔직한 피드백을 들어보고 싶은 마음에 마련한 자리이니, 10월 26일에 부담 갖지 말고 찾아와 줘! 레터어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좋아. 커피는 물론 우리가 대접할게. 연이랑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자체가 기쁨인걸! 우리가 실제로 마주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다니! 떨리기도 하고 너무 기대된다. 기다리고 있을게! 많은 신청 부탁해😊

  북한과 우리나라가 벌써 몇십 년째 '휴전'이란 이름 아래 갈등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 북한의 유력 인사들이 수없이 남한으로 탈출했다는 것도 더 이상 놀랍지 않고 말야. 북한은 우리에게 쓰레기 풍선을 보내고, SNS와 '재난문자'에서 우리는 쓰레기 풍선을 두고 경고와 조롱을 동시에 접하고 있어. 그런데 말야, 연이는 '실제로' 풍선과 삐라를 본 적 있어? 뉴스에는 수없이 많은 풍선들이 발견되어 뭐가 들어있는지 실시간으로 전해지는데, 막상 살면서 북한이 보낸 종이 한 장조차 접해본 적 없는건 참 기묘한 일이야. 내가 이런 얘길 왜 하느냐고? 오늘 소개할 작가가 이와 관련있는 작업을 하거든. 오늘 소개할 전시는 국제 갤러리에서 진행하고 있는 '함경아'작가의 개인전이야.

 앞서 북한에서 보낸 무언가를 받아본 적 있느냐고 물었던 이유는,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삐라'를 접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야. 오죽했으면 '삐라 줍기'운동을 했겠어. 우리 부모님과 같은 60년대생인 함경아 작가도 삐라를 접해본 경험이 있어. 어느 날, 집 앞에 떨어진 삐라를 주웠고, 그건 촉각적으로 느껴지지 않던 '북한'이란 체제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각인하는 계기가 되었나 봐.

 함경아 작가는 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관심 가졌다고 해. 철학, 이데올로기, 사상처럼 보이진 않지만 강력하게 형성되어 있는 사회 구조와 현상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표현하기 위해 회화,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했어. 국제갤러리에서 이번 전시에 중점적으로 다룬 함경아 작가의 '자수 프로젝트'들도 마찬가지야.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삐라를 발견했던 것처럼, 그녀 또한 북한에 일종의 '나만의 삐라'를 만들어 소통하고자 했다고 말해. 그림을 통해 이북의 사람들에게 말을 건넬 수 있다면, 그리고 작업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그들과 소통할 수 있다면, 한국에서 도착한 도안으로 1,800시간 이상을 작업에 임하는 이들은 어떤 생각, 어떤 영감을 받게 될까? 그들이 받게 될 영향은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그들의 내면에 존재하게 돼. 알 수 없는 시간을 지나 결국 도착한 작품들은 그야말로 탄성이 나올 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다워.

 함경아 작가와 북한 수공예 기술자들의 은밀한 작업은 팬데믹이 찾아오면서 그 과정이 더 어렵고 길어졌어.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잇기 위한 작업으로 작가는 캔버스와 캔버스 사이에 여러 줄의 리본 테이프를 횡으로 길게 줄지어 붙이는 작업을 추가함으로서써그 시간을 형상화하기도 해.  

다채로운 색채와 빠져들 것 같은 패턴이 너무 아름답지? 사진으로 질감을 살펴볼 수 있지만, 자수에서 올라오는 독특한 광택감은 사진으로 표현이 잘 안되는 것 같아. 그 광택이 작품들을 반짝반짝하게 보이도록 해주거든. 마지막으로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보여줄게.  

 처음엔 캔버스에 그린 수채화라고 생각했어. 작가의 회화 작품도 전시하는 것으로 생각했지. 그런데, 자세히 보니 수채화가 아니었어. 수채화처럼 물감이 연하게 번지는 묘사까지도 모두 한땀 한땀 수 놓인 자수였던 거야. 충격적이었어. 그토록 자연스럽게 보일 만큼 얼마나 섬세한 작업이 이루어졌을까. 한땀을 수놓고, 작품에서 멀리 떨어져 다음 수는 어떤 색을 어디에 놓을지 고민하는 작가의 모습이 떠올랐어. 끊임없이 고민을 거듭했을 작가의 예술혼과 그 고뇌의 밀도를 생각했어. 작품을 보면서 눈물이 나다니, 생경하고 신비로운 체험이었어.

 이 체험이 신기했던 이유는 내게 가장 좋았던 작품(두 번째로 보여준 작품 '시 02WBS01')과 눈물이 난 작품이 달랐기 때문이야. 보통은 내게 가장 좋았던 작품, 혹은 가장 내 취향이라고 여겨지는 작품에서 강렬한 영감을 느낄 거라고 예상하잖아. 그런데 내 취향의 작품과 감정의 동요를 일으킨 작품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체험하면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의 폭은 정말 무궁무진하다는 걸 느꼈어. 새로운 감각의 지평을 발견한 것 같았지.

 내가 발견한 새로운 지평은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는 나대로 그것을 느끼고 감각하고 있으니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지. 만날 수 없고 알 수 없는 존재들과의 협업을 통해 작품을 완성하는 함경아 작가의 방식은, 그 자체로 비가시화된 것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그 궤적을 쫓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 전시의 제목이 <유령(Phantom) 그리고 지도(Map)>라고 지어진 게 아닐까. 11월 초까지 이어지는 전시이니, 연이들도 꼭 방문해서 자수 회화를 두 눈에 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나처럼 새 지평을 발견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