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요즘, 나에 대한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아졌어. 물론 글쓰기는 언제나 쉽지 않았지만 뭐랄까…. 완성된 글의 형태라는 건 어느 정도 정해진 구조가 있잖아.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산발적으로 흩뿌리고 도망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내가 쓴 글에 문제를 하나 던진다면, 그 글이 끝나기 전에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게 어렵더라고. 책임이란 건 어느 정도 갈무리된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독자들에게 나름의 결론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그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는 과정에서 결국 맺지 못한 마음마저 황급히 닫아버리고 마무리 짓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어.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어. 물론 거짓으로 글을 쓴 적은 없지만.

연이는 혹시 ‘게으른 완벽주의자’ 알아? 게으른 완벽주의자란 완벽을 추구하지만, 그 높은 기준 때문에 시작조차 하지 못하거나 미루는 사람을 의미해. 그들에게는 100%가 아니면 안 한 것과 마찬가지래. 그래서 완벽하게 해내지 못할 것 같으면 시작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나는 놀랍도록 게으른 사람인데, 그게 완벽주의 성향에서 기인하는 것 같지는 않아. 다만 언젠가 친구가 내게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것 같다고, 나는 ‘100%가 아니면 다 0%’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어. 살면서 한 번도 완벽주의라는 생각을 못 하고 살았는데, 어쩌면 그 맥락에서는 닿을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

내가 삶에서 포착하는 많은 문제들은 대부분 완벽주의 성향과 관련있어. 나는 무엇이든 100%를 채우지 못하면 전체를 다 0%로 매겨버리거든. 그러니 그 엄밀한 기준에 따르면 난 살면서 이룩한 게 별로 없는 사람이야. 위인이 아니니 업적이 없다는 건 차치하더라도, 진정 문제는 성취를 향한 여정에 있어. 늘 100%만을 바라보고 사니 그 길을 걷는 내내 초조하고 불안하지. 그리고 그동안 스스로를 좀먹거나, 아예 안 될 것 같다며 쉬이 포기해버리기도 해. 요즘 나에 관한 글을 쓰기 힘들어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일 수 있어. 100% 매듭짓지 못한 주제로 글을 쓰는 데에 부담감을 느끼는 거지. 마음속 문제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니까. 

아무튼 이런 문제에 골몰하느라 생일 전주는 꽤 우울했어. 그러다, 문득 예전에 읽은 시 한 편이 떠오르는 거야.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됐어. 혹시라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연이가 있다면, 이 시가 힘이 되어주길 바라면서. 그리고 나 역시도, 이 시를 아로새기기 위해서.

⟨needle in the hay*⟩, 황유원
* 엘리엇 스미스의 노래

건초 속에서 바늘 찾는 꿈을 꾸었다

건초 속에 바늘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건초 속에는 바늘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었지만 아마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으로

바늘을 찾았다 실제로는 없어도 어쩌면 거기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며 하나둘

건초를 뒤졌다

바늘을 찾으면 무엇을 꿰매줄 수 있을까 생각하며

혹시 찔리면 손가락에 붉은

핏방울이 둥글게 맺힐 테고

그러면 건초를 붉게 물들이는 행위예술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

하게 될 거라고도 생각하며

건초를 뒤졌다

바늘은 빨리 찾아지지 않아도 좋았다

어쩌면 바늘은 빨리 찾아지지 않으면 않을수록 좋았고

영원히 찾아지지 않아도 좋았다

사실 바늘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고

나는 그게 뭐가 됐든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 때가 가장 좋았다

건초 속에서 바늘 찾는 꿈을 꾸었다

건초 속에서 바늘을 찾을 수 있어 좋았다.

이 시의 화자는 건초 속에 바늘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더라도 그것이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해. 화자의 ‘바늘’이란 무언가를 이룬 상태, 혹은 정태적인 목표에 가까워 보여. 그러나 오히려 화자는 목표를 빠르게 달성하는 데 가치를 두지 않아. 바늘이 있다는 믿음과 그것을 찾는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여겨. 그리고 바늘을 영원히 찾지 못해도 좋았다고, 바늘을 찾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지. 

이뤄도 좋고, 이루지 않아도 좋고, 찾다가 실패하든, 뭐가 됐든 좋은 것. 그렇다면 나는 내 바늘을 글쓰기라고 정할래. 글을 쓰면서 무언가를 이뤄도 좋고, 이루지 않아도 좋으니까. 또, ‘내 삶의 의미’도 바늘로 정하고 싶어. 그래서 살면서 내 삶의 의미를 이뤄도 좋고, 이루지 않아도 좋고. 영원히 이루지 못하더라도, 어쨌든 바늘 찾기(삶을 살아가기)를 할 수 있어 좋았다고 여기며 살고 싶어. 아마 그 과정에서 숱하게 실패하고 주저 앉아 엉엉 울겠지? 그 때마다 이 시와, 지금의 결심을 떠올려야지. 내가 원하는 건 '바늘 찾기'이지, '바늘'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