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死靈)⟩, 김수영

……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아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아라

이 황혼도 저 돌벽 아래 잡초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 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도

행동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아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김수영은 1921년에 태어난 한국 현대시의 대표적인 시인이야.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해방 이후 독재정권 하의 혼란까지. 전쟁과 억압의 시대를 살며 문학과 현실 사이에서 깊은 고뇌를 남긴 사람이기도 해. 그의 삶은 불안정했고, 끊임없이 자신의 무력함과 시대의 모순을 반추했지. 그게 잘 드러난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사령(死靈)⟩이야. 이 시에서 화자는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정작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무력한 자신을 비판해. 활자로만 존재하는 자유, 그리고 침묵을 지키는 화자. 그런 화자는 자신을 돌아보며 '죽은 영혼'이라는 냉혹한 진단을 내려.

그 모습은 오늘의 우리와도 닮아있어. 우리는 늘 자유를, 변화를, 정의를 외치고 싶어 하지만 현실에 곧 순응하고 말지. 우리 세대가 자유를 외치기 주저하는 이유는 김수영의 시대처럼 눈앞에 총칼이 있어서만은 아냐. 현대의 총칼은 어쩌면 우리의 내면에 있는 냉소주의일지도 몰라. 오늘날 냉소적인 태도는 똑똑함의 상징처럼 여겨져. 비관적인 태도는 합리적이라며 찬사를 받기도 하고. 반대로 진지한 열망은 때로 '유치하다'거나 '순진하다'는 비난을 받기 일쑤지. 부정하고, 멀리서 비웃는 것이 쿨하다고 착각하면서 말이야.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척하며 시위에 나간 사람들을 종종 우습게 만드는 이들도 있어. 그러나 그런 조소는 결국 본인이 지닌 무력함과 체념에 대한 변명일 때가 많아. 정말 똑똑하고 합리적인 이들은 냉소 속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아니야. 자신의 자유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영혼이 사령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