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삶이란 연속된 것이지만, 1월 1일이라는 숫자는 마치 삶이 단속된, 여러 챕터의 연결인 것처럼 보이게 해 줘. 새로운 장의 첫 페이지를 넘기는 기분이랄까. 실제론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의 한 지점일 뿐임에도 '새'해에는 '새'마음가짐으로 '새'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에너지가 솟구쳐 오르는 이유이기도 하지. 나는 여러 해 동안 새해 다짐을 했었는데, 2024년에는 꽤나 길게 적었더라고. 다시 읽으니 지난 한 해 내가 보냈던 시간들에 대한 위로가 되기도 했고 말이야. 그래서 이번 레터에서는 일 년의 선물과도 같은 오늘, 내 예전 새해 다짐들을 연이들과 나눠보려고 해.

• 2024년, '할 수 있을 수 없는 것들'을 더 많이 찾기

• 2024년, 나의 무기 만들기

요즘 같은 세상에서 내가 아직도 시인이라는 사실이 후회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날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어서

그래서 남몰래 공포에 시달릴 적마다

만약 내가 시를 쓸 수 없었다면 어쩔 뻔했나 싶을 뿐이다.

세상에서는 이토록 천대받고 무용한 것이 내게는

차마 내 목숨보다 귀하다고까지는 말하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내 목숨을 지켜 줄 정도로는 귀하다.

그러니

어차피 그런 것이 세상이라고,

어쩔 수 없는 이 세상의 어려운 이치라고 믿으면서,

내게 남은 나머지 인생을 마저 살아 내고자 한다.

시는 나의 무기다.

- 이응준 ⟨목화, 어두운 마음의 깊이⟩ 작가의 말

이응준의 시집 ⟨목화, 어두운 마음의 깊이⟩에 나오는 작가의 말이야. 세상에서는 천대받고 무용하지만, 적어도 내 목숨을 지켜 줄 정도로는 귀한 나의 무기. 나의 경우에는 시(詩)였어. 사는 게 너무너무 무서워서 어깻죽지를 붙잡고 울었던 지난날 밤, 심보선의 ⟨청춘⟩이라는 시가 없었다면, 나는 세상의 관성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유난떠는 내가 역겨워 견딜 수 없었을 거야. 2024년 한 해동안 연이들과 레터어리로 만나며, 그리고 시를 직접 써 보며 다소나마 내 무기를 벼릴 수 있어서 무척이나 감사했어.

각자의 삶은 투쟁이야. 삶 너머에서, 혹은 기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싸움들. 가끔은 스스로가 날 공격하기도 하는 그 외로운 전투에서 자신의 목숨을 지켜 줄 무기를 찾는 일. 이건 다만 나의 목표가 아니라, 이 글을 보는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야. 2025년 한 해는, 꼭 삶의 무기를 찾기를, 혹은 이미 찾았다면 잘 벼리기를 진심으로 바라.

아쉽게도 올해는 아직 새해 목표를 세우지 못했어. 여러모로 마음이 어렵고 정신이 없었거든. 아마 많은 연이들에게도 지난 12월은 유난히 힘겨운 달이었을 거야. 계엄령이 선포되며 긴장과 불안 속에 지내야 했고, 제주항공 참사와 같은 비극은 우리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했지. 뉴스에서 전해지는 사건 하나하나는 우리 삶의 평온을 흔들고, 이대로 새해를 맞이해도 될까 하는 회의감마저 들게 했어. 힘든 시간 속에서 일상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버거운 일임을, 그리고 우리가 그런 날들을 함께 지나가고 있음을 다시금 느끼는 시기였고. 어떤 일은 뉴스 헤드라인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일생에 깊고도 아픈 흔적으로 남게 되잖아. 그래서인지 올해를 마무리하며 기뻐하기도, 새해를 축복하며 시작하기도 쉽지 않게 느껴지더라고.

하지만 이런 시간 속에서도 누군가는 옆에 있는 이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다독이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전해주고 있잖아. 이번 글도 그 힘의 일부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오늘 레터를 쓰며 나 역시도 그런 마음으로 임했거든. 2025년이 시작된 지금, 지난 시간의 무게를 완전히 덜어내진 못했을지라도, 앞으로 이어질 날 속에서 조금씩 따뜻한 빛이 번져 나가기를. 레터어리가 연이들에게 소소한 온기가 되길 바라며.

연아, 새해 복 많이 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