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레터에서 다룰 책은 문지혁의 ⟪초급 한국어⟫야. 책 이름만 보면 '히라가나부터 시작하는 일본어'처럼 참고서 느낌이 나지? 그런데 이 책은 참고서가 아니라, 뉴욕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주인공 '문지혁'의 이야기를 다룬 자전적 소설이야. ⟪초급 한국어⟫는 단순히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로서의 소회를 넘어서 언어, 이방인으로서의 삶, 그리고 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오늘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언어를 가장 낯선 시선으로 다루어 낸 이 책을 소개해 보려고 해.

⟪초급 한국어⟫를 다 읽고 난 후, ‘초급’이라는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도 내 마음은 가뿐하지 않았어. 오히려 무겁고 복잡한 감정이 남았지. 이 소설은 답을 주는 이야기가 아니었거든. 대신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끝을 맺어. 미국에서 보낸 3주는 나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던졌어. 익숙한 것과 낯선 것, 한국어와 영어, 내 삶과 다른 사람들의 삶 사이에서 나는 과연 어디쯤 서 있는 걸까?

⟪초급 한국어⟫는 단순히 언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야. 그 언어를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지닌 복잡한 삶에 대한 이야기지. ‘초급 한국어’ 수업의 질문들은 익숙한 세계 속에서 우리를 낯선 공간으로 밀어 넣어. 그러면서 묻는 거야. ‘나는 안녕한가? 나는 잘 지내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어. 이 소설은 애초에 우리에게 정답이나 해답을 찾으라고 요구하지 않거든. 대신, 그 질문들에 대해 주인공이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

우리는 당연하게도 스스로를 ‘한국인 만렙’, ‘한국어 만렙’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아닐 수도 있어. "안녕하세요?"를 "Are you in peace?"라고 번역해야 그 의미를 제대로 곱씹어 볼 수 있었던 나처럼. 그리고 서울을 떠나서야 서울이 얼마나 작은지 깨닫고, 비로소 서울을 그리워할 수 있었던 주인공 '문지혁'처럼. 낯선 문화의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본 적이 없는 우리는 아직 ‘초급 한국인’ 일지도 몰라.

다른 말이지만, 예전 주영화의 네 번째 레터 기억나? 유럽 여행에 대한 소감을 담은 레터였는데, 마지막 문장이 이거였거든.

한 사람의 목소리를 제외하면 한국어를 거의 들을 수 없는 도시에서 나도 몹시 비슷한 감정을 느꼈어. 늘 낯섦을 추구하고, 익숙함으로부터 단절되고 싶다고 줄기차게 외쳤던 나인데 말이야! 어렸을 때부터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살고 싶단 로망이 있었는데, 더듬더듬 말이 통하는 나라에서 보낸 3주도 내게는 꽤나 쓸쓸하더라고. 짧은 시간 동안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찍먹해 본 나는 마침내 깨달았어. '지금까지 내가 이토록 한국을 사랑하는 것도 몰랐다니. 나는 진정 초급 한국인이었구나!'

나처럼 스스로를 '초급 한국인'이라고 느끼는 연이에게는 물론, 그렇지 않은 연이에게도 이 책을 추천할게. 한국인으로서는 만렙일지 몰라도, (이장욱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 모두가 '초급 인생'을 살고 있는 중이잖아. 그러니 연이도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의 꿈과 삶, 그리고 그 안에서 놓치고 있는 질문들을 발견해 보길 바라. 그게 무엇이든, 분명 새로운 시선을 선물해 줄 테니까. 그리고 책장을 다 덮은 연이의 마음속에는 아마 이런 물음이 들 거야.

“나는 안녕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