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는 고어물 잘 봐? 나는 저번 주말에 미루고 미뤘던 <서브스턴스>를 보러 영화관에 갔어. 극장가에서 보기 드문 바디호러물인데, 쉽게 말해 인체를 갈가리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기괴한 장면이 많이 나오는 장르야.  

 '감탄하면서 봤지만 타인에게 추천하기 어려운 영화' <서브스턴스>를 향한 전반적인 평은 이래. 나도 동의하는 바야. 예뻐지는 주사에 관한 설정도 흥미롭고 메시지도 노골적이어서 어려운 영화는 아니었거든. 그렇지만 단순히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한다는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는 아쉽더라고.

 이야기는 '엘리자베스'라는 한물간 배우가 고정 프로그램에서 빠지면서 시작돼. 한때 아카데미상을 타고 찬사를 받던 엘리자베스는 어느덧 주름지고 처진 자기 피부처럼 비루한 신세가 됐어. 주사 한 번이면 자신보다 '더 나은 버전'의 신체가 만들어진다는 달콤한 제안에 엘리자베스는 넘어가지. 그렇게 탄생한 '수'와 엘리자베스는 규칙에 따라 일주일씩 돌아가며 생활하기 시작해.

 하지만 이 규칙이 지켜질 리 있겠어? 젊고 아름다운 수일 때의 시간이 더 충만한데 굳이 엘리자베스로 돌아가고 싶어 하진 않겠지. 결국 수는 엘리자베스를 착취하며 더 길게, 오래 현재를 살려고 해.

 단순한 외모지상주의 비판이 아니라는 점은 여기서 드러나. 엘리자베스의 경쟁자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인 수거든. 수 역시 엘리자베스의 생명을 빨아먹어야만 생존할 수 있어. 주사 키트에 든 마지막 경고문 'REMEMBER YOU ARE ONE'처럼 못난 나를 미워하는 것도, 그런 나를 혐오하며 갉아먹는 것도 오롯이 나인 셈이지.   

 한병철 교수는 저서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의 자기착취 현상에 주목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더 나은 내가 되도록 은연중에 강요받아. 수가 엘리자베스를 잠식하듯 자신에게서 끝없이 가능성을 착취하지. 나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며 더 생산적이고, 더 아름답고, 더 특별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어. 나를 갈아 넣으면 넣을수록 점점 '진짜 나'는 죽어가는데 말이야.

 영화는 결국 완벽함을 칭송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신을 소진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고발해. 암세포처럼 자기복제와 팽창을 멈추지 못하는 강박을 갖도록 스스로 몰아세우는 거야. 아름다움, 성공, 젊음을 향한 집착. 이 모든 욕망이 '더 나은 버전'의 나를 만들기 위한 도구라면, 우리는 어디까지 나 자신을 소진해야 할까? 아마 그 끝은 없겠지.

 연아, 어쩌면 우리는 이미 스스로 착취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몰라. 자기발전이라고 믿었던 선택이 사실은 나를 소모하는 행위였던 적 있지 않니?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에 자신을 졸라매는 굴레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시간이 필요해.

 노화를 두려워하고, 커리어의 내리막길에서 괴로워하고, 아름다움이라는 이상을 좇느라 가랑이가 찢어지는 우리에게 영화는 이렇게 질문해. 당신은 지금 누구를 위해 '더 나은 나'를 원하는가? 그 욕망은 당신의 것이 맞는가? 실제 본질(Substance)인 나는 어디 있는가? 언젠가 이 질문에 우리 모두가 답변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