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광화문 근처에서 일했어. 그래서 종각역에 내릴 때면 가끔 노숙자를 마주칠 수 있었지. 솔직히 그때 나는 그들을 마치 게임 속 NPC처럼 여겼던 것 같아. 플레이어가 아닌, 특정 장소에 가면 항상 같은 자리를 서성이는 그런 존재 말이야.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들 곁을 지나칠 때면 눈이 마주치거나 몸이 닿을까 봐 슬쩍 피해 가곤 했어. 마치 [ 플레이어는 NPC와 접촉할 수 없습니다. ]라는 퀘스트가 주어진 것처럼.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정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 거야.

'저 사람들, 걸음마는 어디서 배웠지?'

"눈을 뜨면 어디서 자야 하나? 짐 들고 어디로 가지? 이 생각부터 한다. 어느 교회에 들어가 잔 적이 있는데, 여자는 나가라고 남자가 고함을 지른다. 밤 12시, 어디를 가라고. 암담하더라. 앞이 캄캄하더라. 남자는 여자가 있으면 잡음이 난다고 시끄럽다고 우리를 내쫓는다. 그때 쫓겨나서 어디로 갔는지 기억이 안 난다.

(…)

아침을 먹으려고 줄을 서는데,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줄을 서는데, 옆에 있던 남자가 하고 싶다고 한다. 도대체, 뭐가 하고 싶다는 건가, 나는 무서워서, 그다음 날부터 아침을 먹으러 가지 않았다.

맨날 가도 나 혼자뿐이다.

여자 홈리스들은 남자처럼 보이기 위해 머리를 자른다. 숨어 다녀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읽으며 몇몇 사람들의 행동은 내가 현실에서 가까이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자신의 것, 그리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들은 때로 억척스럽고 거칠어져야 했으니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약자'의 모습으로만 존재하지는 않거든. 실제로 7인의 여성 홈리스 중,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있고.

이들이 확실히 젠틀한 사람들은 아닐지도 몰라. 그렇지만 한 번쯤은 생각해 봤으면 해. 내가 잠을 자는 것조차 이 세상 사람들이 못마땅하게 여기는 삶, 자고 일어나면 내 살림살이가 쓰레기통에 처박혀도 저항하기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억척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야. 만약 그런 인생을 산다면, 연이 너와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우리는 무슨 근거로 이들의 행동을 평가할 수 있을까?

생존을 위해 거리에서의 삶을 감당해야 했던 사람들, 그럼에도 여전히 이 세계에서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지금껏 우리는 그들과 마주칠 뿐, 만난 적이 없었지. 그들은 명백히 NPC가 아닌, 우리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인데 말이야.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가 외면해 온 그 삶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함께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단지 가깝지 않을 뿐, 이미 같은 공간에 살고 있으니까.